소에몬초 소개

소에몬초는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에 위치하며 도톤보리, 에비스바시, 신사이바시 상점가에 인접한 오사카를 대표하는 번화가의 하나로 음식점을 중심으로 약 60 이상의 점포가 집적해 있는 초광역형 상업집적지입니다.

소에몬초의 역사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거리 오사카 미나미 소에몬초

소에몬초의 역사는 깊어 그 시작은 에도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612년 히라노향(현재의 오사카시 히라노구) 출신의 호족 ‘나리야스 도돈’이 우에마치 구릉에서 흐르는 우메즈가와 강을 이용하여 히가시 요코보리가와 강에서 기즈가와 강에 이르는 운하를 만들었습니다. 1615년 운하가 완성되기 직전에 ‘도돈’은 사망했지만 그가 사망한 후 ‘야스이 도보쿠’에 의해 계승되어 동년 11월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초에 이 운하는 ‘미나미 호리카와’로 불리웠지만 후에 사재를 털어 개삭에 힘쏟은 ‘도돈’을 칭송하여 ‘도톤보리카와’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도톤보리강의 개삭과 더불어 양 강가에는 마치야가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소에몬초’의 원점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에도막부가 오사카를 직할령으로 삼고 도톤보리강과 니시 요코보리가와 강의 합류점을 경계로 동쪽 절반의 개발이 진척되어 ‘호테이초’ ‘소에몬초’ ‘온마에초’ ‘큐자에몬초’ ‘기치자에몬초’ ‘릿케초’ ‘구로에몬초’ 등 수많은 마치야가 건설되어 여덟개의 강변마을이 탄생했습니다.

‘소에몬초’라는 명칭은 17세기 중엽에 마을의 관리였던 ‘야마노구치야 소에몬’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니시 요코보리가와의 서쪽에도 ‘소에몬초’가 있었습니다만 후에 변경되었습니다. 많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에몬초’라고 불리웠으며 1703년에는 요정 27채가 면허를 얻었다는 자료가 있어 에도시대 때부터 유흥지로 번성한듯 합니다.

도톤보리강과의 관련과 더불어 발전해 온 거리

1626년 간시로마치(현재의 미나미센바 주변)에서 도톤보리가와 남쪽 강가까지 연극 흥행 및 유곽이 옮겨져 도톤보리는 ‘연극의 거리’로서 번영합니다. 이 무렵부터 연기자가 도톤보리가와에서 연극 공연장 등에 들어가는 ‘후나 노리코미’와 같은 ‘강을 활용한 독자적인 문화’도 발전하여 도톤보리강 주변은 마치야 문화가 발전, 응축된 거리로서 서서히 그 모습이 확립되어 갔습니다. 도톤보리강의 남쪽 강변(=도톤보리 주변)에서 연극을 감상한 후 식사와 술을 즐기기 위해 북쪽 강변(=소에몬초 주변)에 들르는 사람들의 흐름도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의 소에몬초에는 가부키 배우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에몬초 상점가가 주최하는 ‘여름축제’가 개최되는 도톤보리 강의 가교 ‘아이아우바시’는 168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다리로 당초에는 ‘나카하시’ 또는 ‘신나카하시’라고 불리웠습니다. 1707년에 첫 공연된 ‘지카마츠 몬자에몬/신주 가사네이즈츠’의 한 구절에도 ‘나카하시’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이아우바시’라고 명명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다리 남측에는 ‘연극 야구라’가 늘어선 연극거리로 북측 강쪽의 ‘소에몬초’는 ‘요정거리’, 다리쪽에는 롯켄초라고 불리던 유곽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다리 주변은 매우 화려한 분위기가 있어 ‘아이아우바시’라는 멋스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또한 이 다리는 별칭 ‘엔기리바시(인연을 끊는 다리)’라고 불리워 유곽 사람들은 다리 건너는 것을 꺼렸으며 혼례행렬도 이 다리는 건너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연인끼리라도 여성이 ‘아이아우바시’를 건너 ‘유곽여성’으로서 일하게 되면 사랑하는지 어떤지 상관없이 수많은 손님들을 접대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날 말하는 ‘TPO를 구분짓는 다리’라는 뜻으로 ‘엔기리바시’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오사카의 문화, 유행의 발신지

‘소에몬초’는 메이지 시대에는 고급요정들이 즐비한 ‘난치 5유흥가(소에몬초, 구로에몬초, 야구라초, 사카마치, 난바신치)’의 하나로서 그 이름을 떨쳐 수많은 요정과 요리집은 물론 이발소, 가발점, 유카타 점포 등 요정 관련 점포와 목욕탕, 세탁소, 여관 등 격자문의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포석길’이었던 소에몬초 거리에서는 예기들이 게타소리를 내며 걸었다고 합니다. 북측 강변에는 버드나무들이 풍정을 느끼게 해 주는 제방이 있어 납량 요리집, 세탁소, 여관 등 격자문의 건물들이 즐비했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도톤보리강에서 북측의 시마노우치측(=강변측) 지역은 ‘고급지역’ 그 대안인 남쪽 강가는 ‘서민적인 사교의 거리’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소에몬초’는 예전부터 가장 격식 높은 유흥가로 알려져 ‘돈다야’ ‘이타코’ ‘야마토야’와 같은 대규모 요정이 그 중심적인 존재로서 번성했었습니다. 당시의 요정은 ‘유흥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선착장 일꾼들의 ‘정보교환과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즐겼던 요리는 ‘식도락의 거리’로 불리우는 오사카의 명성을 뒷받침하였으며 예기가 입는 기모노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 ‘소에몬초’는 오사카의 문화와 유행의 발상지로서 항상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소에몬초에 가는 것이 품격이었던 거리

다이쇼 시대가 되자 경제,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요정문화’도 확산되어 ‘소에몬초’는 더욱 활기를 띄게 됩니다. 예전부터 강을 이용한 상거래가 이루어졌던 오사카에서는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오사카에 도착한 선장들을 위로하기 위해 상인이 술자리를 마련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에몬초’에서도 오사카의 상업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러한 연회석도 자주 열려 유곽과 요정 등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이 무렵 예기는 600명 가까이까지 늘어났다고 하며 ‘인기 예기’로서 그 이름을 전국에 떨친 예기도 수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각 점포가 절차탁마함으로써 품격있는 점포와 기품있는 예기만이 살아남아 자연스럽게 거리 전체가 격식 높은 유흥가로 되어 갔습니다. 그에 따라 남성객들 사이에서는 ‘소에몬초’로 놀러오는 것이 하나의 품격이 되어 이 거리에서 ‘염문 등을 퍼뜨리는 것’이 번성하는 상인으로서 이름을 떨치는 길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1935년 무렵의 ‘난치 5유흥가’는 요정 750채, 예기 2,800명, 창기 1,800명을 헤아리기까지 발전해 있었습니다만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소에몬초’ 근방도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강 건너편의 도톤보리 연극 공연장이 잇달아 폐쇄되고 1944년에는 행정 당국의 통지 하에 ‘소에몬초’에서도 많은 요정이 영업을 단념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이듬해 오사카 대공습으로 오사카 미나미 지역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후에는 ‘최고의 화려하고 멋진 지역’이라고 불리웠던 예전의 유흥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수많은 요정이 들어선 ‘소에몬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소에몬초’ 거리 곳곳에서는 저녁 때가 되면 샤미센과 북 등을 배우는 소리가 들리고 춤을 배우는 모습도 격자문 사이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풍경과 도톤보리강에 떠 있는 몇 척의 배 등 ‘소에몬초’와 그 주변은 이 지역의 독특한 풍정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

고도경제성장기에 들어서 사람들의 취향도 크게 변화되어 요정 대신에 바나 캬바레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정의 수는 점차 감소했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는 도톤보리강 주변에 70여채의 요정이 영업을 하였고 그 대부분은 ‘소에몬초’에 점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거리의 이름을 붙여 1972년에 발매된 ‘소에몬초 블루스’ (헤와 가츠지와 다크호스)라는 노래가 200만장의 대히트를 기록하는 등 ‘소에몬초’는 시대에 맞춰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도 항상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거리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음식과 술, 강이 있는 거리 소에몬초

‘소에몬초’는 소에몬초 거리를 중심으로 동서 약 500m, 약 2.5헥타르의 상점가 지구 내에 700점포 이상이 집적하는 전국 유수의 번화가로서, 또 이 거리에서 장사하는 점포의 대부분이 저녁때부터 심야를 중심으로 영업을 한다하여 ‘오사카의 밤의 중심지’로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근년에는 세계 규모로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이 간사이에 첫 출점하거나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진 체인점의 신규 출점 등도 있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슐랭 가이드에 게재되는 점포를 비롯하여 이 지역의 독특한 식문화, 술문화를 선도하며 발전시켜 온 다양한 음식점과 주점, 점포, 서비스업 등이 자리해 있습니다.

‘소에몬초’는 이 거리에서 장사하는 수많은 점포가 일치단결하여 리만 쇼크 이후 세계 경제의 혼란과 국제경쟁의 격화를 포함한 글로벌화 시대의 도래, 한신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등 미증유의 재해 발생 등 격심한 시대의 물결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거리로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중시하면서 소에몬초 거리 ‘포석길’ 미화를 비롯한 대규모 거리풍경 정비, 도톤보리 강가 산책길을 정비하는 등 새로운 거리의 매력을 가미하면서 이 거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음식과 술, 강이 있는 거리 소에몬초’를 ‘거리조성 컨셉’으로 복잡한 사회의 변화, 많은 사람들의 취미, 취향의 다양화에 대응하여 상업 모럴이 낮은 사업자에 대한 대책도 강구하면서 더욱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이 독특한 문화와 지역성을 지키고 육성, 발전시켜 가면서 세계 각지에서 그리고 일본 전국에서 많은 고객들이 방문하실 수 있는 거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가겠습니다.

소에몬초 상점가 행사

1월

“宝惠驾” 彩轿游行

【개최】 매년 1월 10일 개최(예정)

호에카고 행렬은 이마미야 에비스 신사 도오카 에비스에 맞춰 실시되는 오사카 미나미 지역 최대의 행사입니다. 오사카 미나미 지역 각지의 상점가와 기업이 선보이는 ‘호에카고’가 합류하면서 이마미야 에비스 신사로 참배하러 갑니다. 밤에는 소에몬초 상점가와 근린 상점가(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 에비스바시스지 상점가, 도톤보리 상점가 등)가 협력하여 소에몬초와 도톤보리를 행진하는 ‘밤의 호에카고’도 실시됩니다. 이 ‘밤의 호에카고’가 끝난 후에는 당 상점가의 약 20~30점포에 ‘복을 들고 도는’ ‘후쿠사사 쿠바리’라는 유흥가만의 독특한 행사도 실시됩니다.

2월

액막이 오바케 떡찧기

【개최】 매년 2월 3일 개최(예정)

난치 유흥가의 풍습인 ‘오바케’를 현대풍으로 계승하면서 세츠분 날에 가정에서 ‘마메마키’와 길한 방향을 향해 먹는 ‘마키즈시’처럼 가내안전, 제액초복, 사업번창 등을 기원하며 당일 회장에 오신 여러분과 함께 떡을 찧어 단팥죽이나 인절미를 만들어 나눠줍니다. 20년 이상 이어지는 작지만 뜻깊은 당 상점가의 독자적인 전통행사입니다.

7월

소에몬초 여름축제

【개최】 매년 7월 22일/23일(예정)

소에몬초 여름축제는 당 상점가의 연간 최대행사로 매년 총 3,000~4,000명의 손님으로 붐빕니다. ‘여름 맥주축제’의 중심 행사로서 다채로운 뮤지션과 퍼포머가 출연하는 ‘야외 라이브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당 상점가의 유명점, 인기점이 출점하는 ‘야외 비어홀 기획’을 실시. 그리고 맥주와 관련된 특별기획도 실시되어 여름 밤을 성대하게 장식하는 행사입니다.

소에몬초 교통편

광역

간사이 공항에서의 교통편

  • 간사이 국제공항(간쿠)에서 난카이공항 특급 ‘라피트’로 난카이 난바역까지 약 35분
  • 난카이 난바역에서 도보 15분

오사카 국제공항에서의 교통편

  • 오사카 국제공항(이타미)에서 오사카공항버스로 약 40분(난바 하차)
  • 난바버스 정류장에서 도보 15분

신오사카역에서의 교통편

  • 지하철 미도스지선으로 약 20분(난바역 하차)
  • 지하철 난바역의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오사카역에서의 교통편

  • 지하철 미도스지선으로 약 12분(난바역 하차)
  • 지하철 난바역의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교토역에서의 교통편

  • JR전차로 오사카역으로(약 30분)

근린

  • 오사카시영 지하철 미도스지선 난바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 오사카시영 지하철 미도스지선 신사이바시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7분
  • 오사카시영 지하철 사카이스지선 닛폰바시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 오사카시영 지하철 사카이스지선 나가호리바시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7분
  • 긴테츠 난바선 닛폰바시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 긴테츠 난바선·한신 난바선 오사카난바역 가까운 출구에서 도보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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